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한국 최초의 축복사로 봉사한 김종균 축복사가 2026년 3월 17일 별세했다.
발인은 3월 19일에 진행되었으며, 장지는 충북 음성 대지공원 묘원이다.
최초의 축복사로서 500여명에게 주님의 축복을 전하다
그는 1960년 침례를 받고 교회에 가입한 한국 초기 성도로, 평생을 신앙과 봉사에 헌신했다. 특히 1973년 3월 8일 서울 스테이크가 조직되던 당시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에게 초대 축복사로 부름을 받아 한국 최초의 축복사로 봉사했다.
그는 당시 37세로, 전 세계에서 가장 젊은 축복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약 40여 년 동안 500명이 넘는 회원들에게 축복을 전하고 신앙의 길을 인도했다.
김종균 축복사는 공주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서울 스테이크 축복사로서의 부름을 다하기 위해 매주 서울을 오가며 봉사했다. 축복을 주기 전에는 서울 성전을 방문해 축복을 받을 이들의 이름을 기록하며 기도로 준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삶은 신앙과 학문을 조화롭게 실천한 모범으로 평가된다.
그는 2023년 6월 서울 스테이크 조직 50주년을 기념하는 ‘제3회 한국 교회 역사 심포지엄’에 참석해, 서울 스테이크 조직 당시 킴볼 회장과의 인터뷰 경험을 나누며 참석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던 바 있다.
대전에서 열린 김종윤 축복사의 추모식
3월 18일 대전 스테이크 대전1 와드에서 열린 추모 예배에서는 그의 생애와 신앙을 기리는 다양한 말씀이 전해졌다. 장녀 김선형 자매는 “아버지는 평생 신앙을 삶의 중심에 두고 가족과 교회를 섬겼다”고 회고했다.
대전 스테이크 회장단으로 봉사했던 정지순 형제는 “축복사님의 말씀은 단순했지만 강한 간증이 담겨 있었다”며 “생물학자로서의 연구 속에서도 하나님의 창조를 확신하고 증거했다”고 말했다. 이어 “축복사님 부부의 건강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해 왔다”며 깊은 존경을 표했다.
대전 스테이크 정양수 회장은 “김종균 축복사님은 학자이자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온 분이었다”며 “그의 축복은 신권의 권능을 통해 전해진 주님의 사랑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가 남긴 신앙의 유산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삶 속에서 계속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북 아시아 지역칠십인 이우철 장로는 고인의 겸손한 모습을 회상하며 “새로 부름받은 젊은 감독을 존중하며 보였던 태도는 젊은 시절 내게 교회의 큰 어른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전했다. 또한 “가족으로 영의 세계에서 함께할 것이라는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은 남겨진 이들에게 큰 안도와 소망이 된다”는 선지자 댈린 에이치 옥스 회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했다.
김종균 축복사는 1936년 대전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이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브리검영대학교(BYU Provo)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학위 과정에서 최고 논문상을 수상했다. 이후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생물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과 연구에 헌신했고, 대학원 원장을 역임한 뒤 2001년 정년퇴직했다.
김종균 축복사는 배우자 최도증 자매와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자녀들 모두 선교사로 봉사하는 등 복음 안에서 모범이 되어 왔으며 아버지가 남긴 신앙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김종균 축복사의 삶을 통해 신앙과 봉사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의 헌신이 한국 교회 역사 속에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