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회원이자 브리검 영 대학교 (Brigham Young University)의 대학원 생이며 영문학 강사인 재론 슬래이터가 작성한 글
하나님은 살아계실까요?
저는 하나님의 실재성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실까요?”라는 질문에 “네, 그렇습니다”라는 대답을 드리며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실재성뿐만 아니라 더 난해한 질문인 “하나님 아버지의 실재성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에 대해도 답해보고자 합니다.
고통과 혼란이 난무하는 우리 시대에 이 지식은 정말 중요합니다. 구세주(하나님의 아들)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실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이 생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실재성에 대한 질문은 우리가 한번쯤은 해봐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17:3)
앨마와 코리호어
저는 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야기는 기원전 74년경 중앙 아메리카 대륙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시기에 반 그리스도인 이었던 코리호어가 살았습니다. 몰몬경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코리호어가 그리스도의 오심에 관하여,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예언들을 거스려 백성들에게 가르침을 베풀기 시작하더라. 그가 말하길, 이러한 바보 같은 것에 왜 얽매이느냐? 왜 그리스도를 기다리느냐? 아무도 그리스도가 올 것에 대해 알 수 없느니라.” (앨마서 30:6, 12)
지금도 역시, 코리호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 코리호어는 그 당시 선지자였던 앨마와 마주하게 됩니다. 코리호어는 “앨마 앞에 서서 크게 부풀린 말을 합니다.” (앨마서 30:31) 이에 앨마는 그를 논반하며 간증으로 마칩니다.
“나는 하나님이 계신 것과 또한 그리스도께서 오시리라는 것을 아노라. 내게는 이러한 것이 참되다는 증거로서 만유가 있도다.” (앨마서 30:39, 41)
그 후, 코리호어는 앨마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할 증거를 요구합니다. 앨마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만물이 하나님이 계심을 나타내나니, 참으로 지구와 그 위에 있는 모든 것과 또한 그것의 움직임과 또한 규칙적인 형태로 움직이는 모든 행성도, 지고하신 창조자가 계심을 증거하느니라.” (앨마서 30:44)
즉, 우리가 하나님의 실재성을 배제하고 그분께서 지금까지 하신 위대한 모든 일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답변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코리호어는 증거를 원하지만, 결국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 흥미롭게도, 후에 코리호어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다음의 글을 적습니다.
“내가 말할 수 없으매, 벙어리가 된 줄 알겠노라. 또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고는 아무것도 이 일을 내게 임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노라. 또한 나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느니라. 그러나 보라 악마가 나를 속였나니, 이는 그가 천사의 모습으로 나에게 나타나 하나님은 없다 하고 또한 내게 가르쳐주었나니, 그것이 속된 생각에 기쁨이 되었느니라.” (앨마서 30:52~53)
제가 이 구절을 읽을 때, 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실재성을 알고 있음에도 왜 “속된 생각에 기쁨”을 느끼는지 궁금했습니다.
코리호어와의 논쟁이 있은 후, 앨마는 하나님의 실재성에 궁금해하는 다른 무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앨마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만일 너희가 너희의 능력을 일깨우고 환기시켜, 참으로 내 말을 시험하기에 이르며, 아주 작은 신앙을 행사하려 할진대, 참으로 설혹 너희가 믿기를 바라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을 지라도, 이 바람이 너희 속에서 역하게 하기를, 곧 너희가 믿어 내 말의 일부를 위한 자리를 내줄 수 있기까지 그리하라.” (앨마서 32:27)
즉, 우리가 하나님의 실재성을 완전히 모르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실재하는지 알고자 하는 소망은 좋은 것이며, 훌륭한 출발점이라는 사실입니다.
신앙과 씨앗
앨마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성을 알기 위해 행하는 노력은 마치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고 가르쳤습니다. “모든 씨앗은 각기 자신의 닮은 것을 내느니라.” (앨마서 32:31) 즉, 그 씨앗이 좋은 씨앗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는 이를 재배해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씨앗을 뿌리면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쁜 씨앗이 아니라, 좋은 씨앗을 뿌리고 정성들여 키운다면 이는 잘 성장할 것입니다. 씨앗이 자라기 시작할 때, 부정적인 영양분을 주면 안됩니다. 여전히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부정적인 생각과 소홀함으로 죽어버린다면, 우리는 결코 그 씨앗이 나쁜 씨앗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앙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씨앗이 자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씨앗을 보며 결코 완전히 자란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어도, 정성을 다해 믿고 소망하며 정성스럽게 키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재합니까?”란 질문에 대한 응답을 찾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씨앗이 자라나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실재합니까?”란 의문에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문은 시작은 의심이 시작이 아니라 앨마가 언급한 바와 같이 “믿고자 하는 소망”이어야 합니다. 씨앗을 뿌린다는 것은 믿기를 택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즉, 씨앗의 잠재력이 지금 보는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씨앗이 잘 자라나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좋은 영양분을 보충해줘야 합니다. 우리는 느낌으로 우리의 믿음이 좋은지 그른지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씨앗은 결국 우리가 이렇게 말하게 합니다. “이것은 좋은 씨앗임에ㅡ 곧 그 말씀은 선함에 틀림없도다. 이는 이것이 내 영혼을 크게 하기 시작함이라. 참으로 이것은 나의 이해력을 밝혀 주기 시작하나니, 참으로 이것은 내게 기쁨을 주기 시작하는도다.” (앨마서 32:28) 선한 것은 “사랑, 기쁨, 평화, 오래참음, 친절, 인내, 신앙, 온유함”과 같은 느낌을 내포합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즉 좋은 것은 우리를 교화하게 합니다. (교리와 성약 50:23)
“영은 진실을 말하며 거짓말하지 아니함이라. 그런즉 영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말하니라. 그리하여 이러한 것들이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명백히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되었느니라.” (야곱서 4:13)
“오 그러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실이라. 이는 그것이 빛인 연고요, 또 무엇이든지 빛 된 것은 선하니, 이는 그것이 분별할 수 있는 것임이라. 그러므로 그것이 선한 것인 줄 너희가 반드시 알리라.” (앨마서 32:35)
저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실재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이 우리 모두를 잘 알고 계시며 사랑하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앨마가 말한대로 해봤고, 참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고자 하는 소망을 갖고 이를 행한다면 여러분도 제가 아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추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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